지난 11월 초, 서울시 교육청은 학교급식 식재료를 구매하는 방법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언론에 보도했다. 주요내용은 학교급식 식재료 구매 시 일반 급식재료 납품업체와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 산하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수의계약 범위를 1000만원 이하로 통일하고, 친환경농산물 권장 사용비율을 기존 초등학교 70%, 중학교 60% 이상에서 50%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선방안은 얼핏 보면 식재료 조달업체 사이의 형평성을 맞추고, 학교급식 운영에 있어 학교의 선택권 및 자율권을 확대하려 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에 대한 교육청의 불신과 견제 심리가 다분히 배어 있다. 특히 학교급식 문제를 단순히 계약방법과 계약금액 문제로만 축소시킴으로써, 서울시 친환경 급식모델의 공공성에 대한 의도적인 흠집 내기가 아닌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교육청은 서울친환경유통센터의 역할과 가치에 대해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다. 센터는 기존의 시장 유통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전국의 생산자 단체와 관계적 신뢰를 맺고 계약재배와 직거래를 통해 ‘안전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만든 공공 기구다. 경제적 이윤만을 추구하기보다는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들이 반영될 수 있는 품질 기준으로 친환경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교육청 방안대로 일반 업체와 센터를 동일하게 취급하면 학교급식이 가지는 다원적 가치가 사라질 수밖에 없고, 이윤논리와 아이들의 건강권 사이의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식재료 공공조달의 유용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데에 있다. 공공조달은 그 규모나 강제력 측면에서 국가가 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이탈리아 로마는 창조적인 공공조달 전략을 활용해 제철에 생산되는 지역의 신선한 유기농 과일과 채소로 차려진 식단을 만들어냈다. 영국에서는 어려움에 처한 지역 생산자들이 로컬 푸드를 통해 학교급식과 연결됐는데, 이러한 기회를 만들어낸 한 가지 방법이 바로 공공조달이었다.
이렇게 세계 각국은 공공조달의 구매력과 교섭력을 활용해 자국의 농업 보호와 식재료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의 흐름이 이러한데도 교육청은 오히려 업체 사이의 형평성과 학교의 자율권을 내세워 학교급식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개선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만일, 교육청의 수의계약 방식 변경지침이 시행된다면, 과거 학교장 100여명의 급식비리 발생 수사 등 학교급식 식재료 납품업체 선정 과정에서 발생했던 학교장과 급식업자의 유착에 의한 비리가 공공연히 재발할 것이다. 백번 양보해 수의계약 방식 개선은 인정한다 해도 친환경 식재료 권장 사용비율을 축소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럴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친환경 농산물보다는 관행 농산물이 공급될 가능성이 높아지며, 결과적으로 급식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국의 친환경 생산농가의 생존문제도 심각해진다. 친환경 농산물 특성상 학교급식과 같은 공공의 영역에서 제도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한 일반 농산물과 경쟁해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서울시는 전국 9개 광역시·도가 추천한 친환경 생산자 단체와 공급계약을 맺고 안정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서울의 거대한 학교급식 규모와 공공조달의 구매력을 활용해 친환경 생산체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다. 교육청 개선방안은 이러한 서울시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이 시행된 지 이제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시행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이들 밥그릇만큼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급식이야말로 미래세대에 초점을 두는 최대의 공공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급식은 시장이나 정치 논리가 아니라 공공의 논리로 풀어야 한다.
<김흥주 |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